2018년 9월 18일 화요일

[리뷰] 피그말리온을 읽고 (조지 버나드 쇼 지음)

피그말리온을 읽고



열린책들의 [피그말리온]을 읽었다.

피그말리온의 뜻도 모른체로 글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피그말리온이라는 이름을 알았다면 이 책의 내용은 초중반의 내용은 다 이해될 정도였을 것 같기도 하다.

리뷰 하기 전

피그말리온은 신화의 인물이다.
조각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그는 자신이 조각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어 종단에는 그 여인과 결혼을 하는 인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창작물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조각가의 마음을 한 번 상상해보자면 창작을 할 때, 자신이 상상하던 것, 원하는 것을 만들어 하고 싶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무언가일 것이다. 욕망은 부족함에서 오는 것일 것이니까.
하지만 창작을 하고나서도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피카소는 예술이 거짓이라 말했다. 그리고 그 거짓을 이용해서 진실을 투영하게 해주는 것이며, 그 거짓을 잘 만들어서 대중을 설득시키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라 하였다. (내맘대로 발번역, 레퍼런스 원문참고 요망)

플라톤의 향연에서는 "오~ 이 세상이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신 에로스여~" 라는 말에 소크라테스가 했던 말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사랑의 신이라는 것은 사랑을 원하는 신일 것이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 맞는가? 맞다면 그 반대의 추함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내적 아름다움도 있고, 외적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라 할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 한다는 것은 더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거나, 지금 가진 아름다움을 계속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것이다.
사랑의 신 에로스는 자신이 더 아름다워지고 싶어하거나, 지금 가진 아름다움을 계속 쟁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에로스는 추녀일 수도 있다?


뭐 이런 이야기 였던 것같다. 그 뒤에 내용이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욕망은 부족함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건전하건 건전하지 않건 말이다.

때로 그 욕망은 저 위의 사랑의 신처럼 끝이 없을 것이다.
도올 선생은 한 강의에서 이런 말은 했다.
단어가 있기 때문에 욕망한다. 그 단어를 원하기 때문에 끝이 없다.
예를 들어,
돈, 사랑, 믿음

이 단어를 원하는 것이다. 이 단어는 끝이 없고, 얻으면 얻을 수록 그 단어의 크기는 커져서는 처음 자신이 만들었던 단어(그 욕망)이 자신을 잠식할 것이다.
그 단어가 당신을 현혹하고, 나를 현혹하고, 결국 내가 원했던 것이 그 단어, 그 개념, 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행복한 삶일까?
저 위에 있는 피그말리온의 삶이 나는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결혼을 하려고 아름다운 여인을 창작하였을까? 아닐 것이다.
예술가가 저 여인 안에 갇히려고 예술을 배우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조각가였다. 조각을 하는 자였다. 그는 피카소의 말처럼 조각이 거짓임을 알고 있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만든 조각에 눈이 멀어, 신에게 기도하고, 그 기도 부름에 신은 여인을 살아있게 하였다.

그렇다면 여인은 무엇인가?
영혼이 있다면 어떤 영혼인가? 피그말리온이 원하는 영혼이 그 안에 들어 있을까?
피그말리온을 사랑하지 않는 여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신은 피그말리온을 사랑하는 영혼을 불어 넣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순종하는 여인을 만들었던 것일까?

그는 결국 그것이 조각품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정말 조각품이 살아숨시는 무언가를 원했다면, 그녀를 홀로 설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피그말리온은 그저 살아숨쉬는 조각품을 원했던 것이 아닐까?
그는 아마 이것이 그저 조각품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조각품을 만드는 조각가였으니 말이다. 자신의 본분을 잃을리 없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조각품의 이름은 갈라테아, 거품의 요정을 뜻한다.

피그말리온으로 돌아오자.

책의 리뷰로 돌아와서,
조지 버나드 쇼는 이 작은 책으로 많은 것을 담았다.

귀족 사회 비판이나, 당시 빈부의 격차라던가 그런 것들을 잘 조명했다고 한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붙는 수식어일 수 있다. 오래된 소설 중에 저런 말이 적혀있지 않은 소설이 어디있는가.
분명 그는 피그말리온이라는 단어에 집중했을 것이다. 그러니 피그말리온에 집중해보자.


한 신사가 한 여인을 귀족의 세계로 오도록 만든다. 그녀에게 귀족의 말투를 알려주고, 귀족처럼 입혀준다.
그리고 그녀를 다른 귀족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가르침의 결과물을 확인받는다.
신사가 생각하기에는 그 여인을 새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는 신사 헨리 히긴스의 창작물인 것이다. 그리고 헨리 히긴스는 피그말리온 일 것이다.

헨리 히긴스는 창작물을 사랑했을까? 맞다 사랑했으나, 그녀를 창작물로서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진정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는 조각품이 아니다. 인간이다. 그녀의 이름은 일라이자 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떠난다.

후일담

이후에 후일담이라는 내용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희극이 런던에서 공연을 할 때, 일라이자가 부캐를 던지는 장면을 넣었다고 한다.
조지 버나드 쇼는 그 결말을 아주 싫어했으며 뒤에 결말을 덧붙인 것이다. (이 점에서 조지 버나드 쇼가 좀 졸렬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창작물이 파생되어 가는 것을 거부하는 피그말리온 같은 사람 같으니라고)
대중들은 이 둘이 다시 만나기는 판타지가 이뤄지길 바랬을까?
결국 일리아지와 헨리 히긴스가 만나는 결말이 있는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영화는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고, 193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Academy Award for Best Adapted Screenplay)을 받았다고 한다.(레퍼런스 2 참고)
(요즘도 그러지 않은가? 나이많은 남자와 나이적은 여자가 이루어지는 로맨스를 욕하는가하면 그런 판타지를 원하고 본다.)


후일담에 대해서 좀 이야기 해보자. 진짜 결말을 내기 위한 변명같은 느낌이 강하다. 그럼에도 글을 아주 잘쓴다.
후일담이야 말로 조지 버나드 쇼가 생각했던 이 작품의 결말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왜 이 글을 썼는지 이해해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일라이자가 자신이 원하는 남자와 결혼하여 꽃집을 차리고 행복해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자신만의 힘으로는 살아남지 못한다. 나는 그녀가 당차게 홀로 힘으로 살아남기를 바랬지만 그렇지 못했다.
못살아도 행복하기를 바랬지만 그러지 못했다.
물론 변명거리는 많다.
그녀는 천재가 아니다. 또한 하층민의 교육은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을 받았음에도 영어발음이 좋지 않다는 것이 그 증거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남편이 비상한 것 또한 아니다. 멋진 교육을 받지도 못했다.

일라이자 직간접적으로 피그말리온에게 수 많은 도움을 받는다.
그녀는 계속 손을 벌려 자괴감이 든다고 써있지만, 아낌없이 주는 피그말리온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가 없었으면 당장 다시 거리로 꽃을 팔았어야 할지도 모른다.
역시 못배워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자괴감이라니...
사람은 때때로 자신이 불쌍해져야 특별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원래 자립은 힘든 것이다. 돈은 원래 벌기 힘든 것이다.
무일푼에서 중산층으로 가는 것은 원래 힘들었다. (그전엔 더 힘들 었을 것이지만)
결국 히긴스와 그의 동료가 없었으면, 일라이자의 자립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창작물을 외면할 수 없는 그들이었을 것이다.

feminism

이 글이 페미니즘을 위해 글을 읽힌다고 들었다. 그렇다. 당찬 여자는 항상 멋지다.
그녀는 꽃 한송이를 팔 때도 아주 당찼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여기 모든 것이 피그말리온의 도움이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길거리에서 경찰에게 잡혀갈까봐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제 길거리에서 꽃 한송이를 팔려고 신사들을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꽃집 사장이다.
이 모든 것이 피그말리온으로 인해 시작되었고 완성되었다.
나는 그녀가 좀 더 자신에게 기회를 준 이에게 예를 갖췄으면 좋겠다 싶었다.

마치며

피그말리온은 당대의 계급사회를 보기좋게 풍자했으며, 또 경쾌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시대가 원하는 케릭터를 만드는 척하면서 보기좋게 비꼬았다. (적어도 원작에서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위트는 아직도 유효하다.
멋진책이다.

레퍼런스

1. picaso's quote
2. Pygma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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